하지만 숲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자연을 훼손해서 아파트를 지으면 경제적 이득이 크지만, 보전하는 일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데이터조차도 충분치 않다. 개발로부터 자연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정 공간계획에 이를 반영해야 하는데, 생물다양성에 대한 정밀한 데이터는 일부 과학자들의 노력만으로는 구축하기 어렵다.
그래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시민과학이다. 대표적으로는 ‘네이처링’, ‘갯벌키퍼스’ 등의 모니터링 기록 플랫폼이 있다. 특히 네이처링은 지난 10년 동안 169만 여 건의 생물기록이 누적되어 있으며, 2023년 한해에만 42만 건이 기록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우리 동네의 자연 생태계를 기록한 데이터가 쌓이는 것도 의미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지역에 더 애정을 갖고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보전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높아질 것이다.
시민과학자가 된다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어렵지 않다. 일단 전문가용 망원경이 없어도 좋으니 가까운 강과 숲, 바다로 가보자. 그리고 우리와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들과 눈을 맞추고, 어플리케이션에 이름을 알 수 있는 녀석들을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위기의 전환, 기후유권자로부터
플로깅을 하고, 국민연금에 의견을 내고, 시민과학자가 된 시민들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바로 유권자로서 표를 행사하는 ‘선거’다. 지난 22일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미래사회환경센터의 보고서는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낙선한 중요한 원인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우려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기후변화를 매우 중요한 이슈로 생각하는 공화당원의 약 4분의 1이 민주당 바이든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파리협약을 탈퇴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위기의식이 높아졌고, 이 결과가 선거에 반영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22일 흥미로운 발표가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 기후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22일 녹색전환연구소, 더가능연구소, 로컬에너지랩 등이 18세 이상 시민 1만 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조사 대상자 중 기후유권자는 33.5%로 분석됐다. 지역별로는 특히 전남이 38.1%로 가장 높고, 울산이 29.6%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1대 국회가 기후위기 대응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도 63.5%에 달했다.
정치권도 분주하다. 민주당이 1호 인재 영입으로 발표한 박지혜 변호사는 삼척 석탄발전소 건립 반대 공익소송을 맡았던 기후위기 전문가다. 국민의힘도 녹색경영정책 부문에서 공부 중인 정혜림 카이스트 재학생을 인재로 영입했다. 정의당과 녹색당도 ‘녹색정의당’이라는 이름으로 선거연합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한 두 명의 인재 영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지난 21대 국회는 이전보다 기후 부문에서 활동해 온 의원들의 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은 전환, 산업, 건물, 수송, 농축수산, 폐기물, 탄소흡수원 등의 배출을 줄이고, 흡수원을 늘리는 다양한 부문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각 상임위마다 기후 의제를 다루는 의원들이 모두 충분히 배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생태 부문은 더욱 열악하다. 생태 위기 역시 보호, 복원, 관리 등의 다양한 대책 마련을 위해 여러 상임위에서 논의되어야 하지만 생태 부문을 ‘수호’하는 의원은 기후 의제보다 더욱 희소하다.
시민의 힘이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
생업에 바쁜 시민들이 따로 걱정하지 않아도 정부와 의회, 기업이 알아서 변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켜보는 시민들의 수준만큼 의제도 딱 그만큼 한 발자국 나아간다. 플로깅을 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분리수거에 더욱 용이한 포장을 요구하는 소비자도 늘어났다.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던 시민들이 도시의 새들을 기록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고민하면 행정도 더욱 나은 환경정책을 고민하게 된다.
시민들의 변화는 기후·생태 부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전반적으로 높아지도록 견인하고, 정부와 기업, 정치도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도록 변화를 이끌어 낸다. 기후·생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캠페인에 참여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와닿고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나둘 행동으로 옮겨보자. 물론 플로깅도 좋다. 시민의 행동은 가장 힘이 세기 때문이다.
